[한백 이야기] 홋카이도 건축 여행 1 : 삿포로를 잇는 선형의 녹지축, 오도리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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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8회 작성일 25-11-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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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5년 9월 08 ~ 14일 /
답사자 : 한주아 PD /
안녕하세요. 한백건축사 사무소의 한주아PD 입니다!
건축답사 여행 보고서를 제출하고 유급연차 5일을 지원받아
홋카이도(북해도)에 건축답사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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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을 찾은 시기는 우리나라의 설날과 비슷한 일본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오봉(お盆)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도쿄나 오사카에서 지내던 현지인들도 북해도와 같은 외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인파가 몰릴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도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설렘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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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격자도시 삿포로
삿포로 도착 - 시계탑 - 오도리 공원 - 삿포로TV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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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홋카이도의 얼굴 삿포로를 만나다."
공항에서 넘어와 드디어 삿포로에 도착!
제가 묵었던 숙소는 다누키코지(狸小路) 상점가 근처에 위치해 있었는데
호텔1층과 연결되는 상점가 덕분에 여행 내내 정말 편리했습니다.
다누키코지(狸小路)는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져 온 삿포로의 대표적인 아케이드형 상점가로
길이만 약 1km에 달하며 1초메부터 7초메까지 이어집니다.
유리 천장이 덮여 있어 비나 눈이 와도 편하게 걸을 수 있고 전통 상점부터 현대적인 카페,
드럭스토어까지 다양한 매장이 모여 있어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르게 되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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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저층부가 상점가와 이어지고 고층부는 객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덕분에 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도 곧장 맛집을 찾거나 간단히 한잔할 수 있었어요.
특히 상점가가 메가돈키호테 매장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쇼핑하기가 매우 편했습니다.
삿포로에서 숙소를 고르신다면 꼭 다누키코지 상점가와 연결된 건물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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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을 가로지르는 선형 녹지축, 오도리 공원 "
삿포로는 격자형 계획도시입니다.
19세기 메이지 개척사 시대에 북미식 도시계획을 본떠 만들어진 체계로
도로에 서서 끝을 바라보면 시선을 가로막는 요소가 거의 없어
동서남북으로 뻗은 바둑판 같은 거리 체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덕분에 행정적으로 관리하기도 좋고 눈이 많이 오는 삿포로의 겨울에도
제설이 훨씬 수월했다고 하니 기후까지 고려한 똑똑한 도시계획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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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가운데 자리한 오도리 공원(大通公園)은 길이 약 1.5km, 폭 105m에 이르는 기다란 선형 녹지축 입니다.
마치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보이드(Void)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여행 내내 오도리 공원은 오고 가며 자주 마주한 공간이었습니다.
도심의 경계이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을 이어주는 녹지축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고
문득 눈 내린 풍경이 궁금해졌던 순간 삿포로가 왜 사계절 내내 찾고 싶은 도시로 불리는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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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 시기에 맞춰 7~8월에는 맥주축제가 열리는데 마침 가장 활기찬 순간에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종종 공원을 지나며 한잔할 때마다 그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숙소를 오가며 스쳐 지나간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잔잔하게 번져오던 맥주의 향기만으로도
도시는 이미 축제의 공기 속에 잠겨 있었고 그 속을 걸어가는 길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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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인공적인 놀이터 대신 넓은 잔디밭과 열린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고 어른들은 느긋하게 앉아 쉬거나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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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공원 한가운데 놓인 이사무 노구치의 조각 'Black Slide Mantra'가 인상적이었는데
멀리서 보면 단순한 조형물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미끄럼틀처럼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격자 도시 속에 비워둔 선형의 공백이 이렇게까지 다양한 질서와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예술·놀이·건축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섞여 있는 풍경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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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포로의 중심 TV타워. "
계획적 요소가 일부 섞여 있긴 하지만 결국 자연발생도시에 가까운 서울의 풍경에 익숙했던 제게
TV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정갈한 삿포로라는 도시는 정말 낯설고도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가로와 가로가 끝없이 수평으로 뻗어 나가 만들어내는 질서를 바라보며
건축과 도시가 어떻게 하나의 시각적 구조를 형성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죠.
삿포로가 격자형 계획도시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비교적 평탄한 지형 덕분에 바둑판식 도로망을 적용하기 용이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메이지 정부의 개척 정책과 북미식 도시계획의 영향, 행정 관리의 효율성,
그리고 많은 눈이 내리는 기후까지 고려된 결과 지금의 질서정연한 도시 구조가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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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TV타워는 도시의 좌표, 말 그대로 0,0 지점입니다.
이곳을 기준으로 도로는 ‘동(E), 서(W), 남(S), 북(N)’과 숫자가 결합된 블록 단위로 이름 붙여지죠.
예를 들어 ‘남3서2’라는 주소는 TV타워에서 남쪽으로 세 블록 서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위치를 뜻합니다.
덕분에 삿포로의 격자형 도시는 누구에게나 직관적으로 읽히는 하나의 거대한 도시지도처럼 작동합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신호등이 가로가 아닌 세로형으로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겨울철 폭설에도 눈에 가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삿포로만의 독특한 방식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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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포로의 역사적 도시적 상징물, 시계탑 "
1878년에 개관한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목조건축물 입니다.
이 시계탑은 원래 삿포로 농학교(현재 홋카이도 대학의 전신)의 연무장(練武場)으로 건립된 건물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개척사를 중심으로 홋카이도의 근대화를 추진했고 미국 매사추세츠 농과대학 교수였던
윌리엄 클라크(William S. Clark)의 영향을 받아 농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시계탑은 단순히 시간을 알리는 시설이 아니라 학생들의 군사 훈련과 집회를 위한 공간이었으며
첨탑에 걸린 기계식 시계 또한 미국 보스턴에서 수입해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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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건물은 홋카이도 개척 초기의 근대화 프로젝트와 서양식 교육 제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농학교가 이전한 뒤에도 시계탑은 도시 중심부에 남아 ‘삿포로의 얼굴’로 자리 잡게 되었죠.
관광의 관점에서 보면 ‘삿포로 실망 명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특별한 볼거리는 없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삿포로라는 도시가 어떻게 근대화와 함께 태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건축적 증거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일정상 첫날 저녁에 이곳을 찾았는데 이후 삿포로를 걷다 보니 여러 번 지나치며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단순한 첫인상을 넘어 여행 내내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렀던 삿포로의 상징적 풍경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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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카상과 저녁을 "
스스키노 메인스트릿에서는 유명한 니카상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간단히 맥주 한 잔으로 여름밤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첫째 날을 알차게 마무리하고 다음 날 이번 여행 중 가장 기대하고 있던
안도 다다오의 ‘부처의 언덕’을 만날 설렘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